
"37년의 시차를 넘은 진실의 복원"

들어가는 말
2026년 어느 날, 컴퓨터에 보관해 둔 오래된 자료를 정리하다가 뜻밖의 원고 하나를 발견했다.
1989년 11월에 출간한 《물》의 초판 서문이었다.
파일을 열어 한 줄씩 읽어 내려가자 빛바랜 종이와 오래된 인화지 냄새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 글에는 당시 내가 왜 ‘물’이라는 낯선 분야에 뛰어들었는지, 무엇을 알아내려 했으며, 그 지식을 누구와 나누고 싶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989년 여름, 우리나라는 수돗물 오염 문제로 큰 충격에 빠졌다. 정수장에서 세균과 중금속,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국민의 불안은 빠르게 커졌다. 수돗물을 그대로 마셔도 되는지, 약수와 지하수는 안전한지, 정수기를 사용하면 정말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지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나 역시 그 혼란의 한복판에 있었다.
깨끗한 물을 마시겠다는 생각으로 약수터를 찾아가 몇 시간씩 줄을 섰다. 어렵게 받아 온 물을 아껴 마셨지만, 어느 날 그 약수터가 수질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폐쇄되는 모습을 보며 큰 허탈감을 느꼈다.
정수기를 구입하려고 알아보니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제품의 종류와 가격, 정수 방식이 제각각이었고, 모든 업체가 자기 제품이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어떤 물을 마셔야 하며, 어떤 정수 방법을 믿어야 하는가?”
그 질문이 《물》을 집필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물》은 1989년 처음 출간된 뒤 여러 차례 개정과 증보를 거치며 오랫동안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내가 보관해 온 출판 기록에 따르면 약 15년 동안 누적 50만 부가량 판매되었다.
한 권의 물 관련 책이 그렇게 오랫동안 읽힌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수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불안과 궁금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싶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시대, 《물》은 그 질문에 답하려는 한 출판인의 기록이었다.
아래 글은 1989년 11월 초판에 실었던 서문을 당시의 표현과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복원한 것이다. 일부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오늘날 독자가 읽기 쉽도록 다듬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까닭
『환경오염 큰일 났다… 죽은 물이 흐르는 전국의 강』
〈동아일보, 1989년 8월 11일〉
『수돗물 대부분 오염… 전국 46개 정수장 중금속·유독물질 검출』
〈한국경제신문, 1989년 8월 9일〉
『수돗물 오염 긴급대책 강구… 배수관 14%가 20년 넘어 수질 악화』
〈동아일보, 1989년 8월 10일〉
『시판 생수 세균 “우글”… 기준치보다 27배 초과 검출도』
〈국민일보, 1989년 10월 24일〉
『지하수로 “생수 만들기” 열풍… 도랑·화장실 옆, 선전은 “천연”』
〈조선일보, 1989년 9월 28일〉
『약수 속사정 이렇다… 우물 관리와 수질에 따라 효능은 천차만별』
〈여성동아, 1989년 9월호〉
『당신이 마시는 물은 안전한가?』
〈소비자시대, 1989년 9월호〉
이상은 당시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수돗물과 생수, 약수터 오염에 관한 기사이다. 느닷없는 정부의 발표와 언론 보도로 온 국민은 또 다른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약수터에서 생수를 길어다 마셨다.
그러나 약수를 뜨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보통 두세 시간 정도 기다려야 5리터들이 물통 두 개를 채울 수 있었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생명수와 같은 물을 받기 위해 대여섯 시간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물통을 약숫물 꼭지 아래에 놓아도, 5리터 통 하나를 채우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릴 때가 있었다.
이처럼 힘겨운 ‘약수 전쟁’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치러야 했으니 시간적·정신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렵게 길어 온 물은 생수로 마시거나 녹차를 달일 때에만 사용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일 때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수돗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약수터를 찾았다가 다음과 같은 푯말을 보게 되었다.
“이 약수터는 수질검사 결과 식수로 적합하지 않아 폐쇄합니다.”
그동안 수돗물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오염된 지하수를 깨끗한 약수로 믿고, 몇 시간씩 기다려 길어다 마셨다는 생각에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정수기를 구입하기로 마음먹고 어떤 정수기가 가장 좋으며 가격도 적당한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조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시중에서 판매되던 정수기의 종류가 약 250종에 이르렀고, 가격도 2만 원에서 17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정수기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던 나로서는 어떤 제품이 좋은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당시 구독하던 조선일보·동아일보·한국경제신문·매일경제신문·한겨레신문에는 정수기 광고가 수없이 실려 있었다.
모든 회사가 자기 제품이 가장 좋다고 주장했다.
어떤 제품은 모든 오염물질을 완벽하게 제거한다고 광고했고, 어떤 제품은 몸에 좋은 성분은 남기고 나쁜 물질만 골라 없앤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광고만으로는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과장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물과 정수기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필자의 소박한 첫 번째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물의 성질과 정수기의 원리 및 기능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깨끗하고 순수한 물을 편리하게 마실 수 있는 올바른 방법을 찾는 것.”
물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와 비슷한 혼란을 겪을 수 있었다. 정수 방식의 차이를 알지 못한 채 광고나 판매원의 말만 믿고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정수기를 설치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필터를 제때 교체하지 않거나 내부를 위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물의 상태가 나빠질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바쁜 생활을 하는 사람이 정수기 하나를 구입하기 위해 전문 자료를 찾아 읽고, 여러 제품의 원리와 성능을 일일이 비교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물과 정수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물》이라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책이 이루고자 한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물이 인체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며 왜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마셔야 하는지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둘째, 수돗물과 약수·생수의 오염 실태를 신문과 잡지 기사를 바탕으로 알림으로써 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셋째, 수많은 정수기에 어떤 정수 방식이 사용되는지 살펴보고, 제품을 선택할 때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여 독자가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돕는다.
넷째, 궁극적으로는 정수기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는 깨끗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일깨우고 그 대책을 함께 생각한다.
이러한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될지는 알 수 없다.
아무쪼록 물과 건강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989년 11월
天壽自然健康硏究所
(천수자연건강연구소)
37년 후 다시 읽으며
37년 만에 이 서문을 다시 읽으니 당시 젊은 서웅찬이 품었던 절박함과 열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약수터에서 몇 시간씩 기다렸고, 수백 종의 정수기 가운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직접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혼자 답을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썼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경험은 내가 건강 출판과 연구의 길을 오랫동안 걸어가게 된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물 전문가였던 것이 아니다.
물을 믿고 마시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 한 사람으로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료를 찾고 원리를 공부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독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바로 그 태도가 이후에도 이어졌다.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겪는 건강 문제를 발견하고, 정확한 자료를 찾아 공부한 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 전달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물》은 단순한 베스트셀러 한 권이 아니었다. 내가 평생 걸어온 건강 출판의 방향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보여 준 책이었다.
1989년의 물과 오늘의 물은 같지 않다
3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달라졌다.
수질검사 체계와 정수 기술은 발전했고, 먹는 물의 관리 기준도 과거보다 세분화되었다. 정수장과 수도 시설에 대한 관리도 강화되었으며, 소비자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1989년 당시의 수돗물 오염 보도를 오늘의 모든 수돗물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기록은 그 시대의 상황을 보여 주는 자료이지, 오늘날 수돗물이 모두 위험하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물에 대한 관심 자체가 필요 없어졌다는 뜻도 아니다.
수돗물은 정수장을 통과한 뒤 긴 수도관을 거쳐 가정에 도착한다. 건물의 배관 상태와 물탱크 관리,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수도관의 정체수 등 생활환경에 따라 확인해야 할 요소가 달라질 수 있다.
정수기도 설치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제품의 정수 원리와 제거 성능을 살펴야 하며, 필터 교체 시기와 내부 위생 관리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수기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기대한 성능을 유지하기 어렵다.
생수 역시 무조건 안전하거나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보관 온도와 유통 과정, 용기의 상태를 살피고, 햇빛이나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약수와 지하수도 ‘자연에서 나온 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깨끗하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주변 환경과 지질, 강우량, 오염원 유입 여부에 따라 수질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정기적인 검사를 확인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관심의 대상도 달라졌다. 오늘날에는 미세플라스틱과 새로운 환경오염물질, 일회용 생수병의 증가와 폐기물 문제 등 과거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결국 1989년의 물 문제를 그대로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과학과 생활환경에 맞게 다시 해석해야 한다.
무엇이 개선되었고, 무엇이 달라졌으며, 무엇을 여전히 주의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일이 필요하다.
《물》의 기록을 다시 복원하는 이유
내가 오래된 《물》의 원고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과거의 성공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적 50만 부라는 판매 기록도 감사한 일이지만, 지금 내게 더 중요한 것은 그 책이 어떤 질문에서 시작되었으며 오늘의 독자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이다.
1989년의 원고에는 당시의 한계도 있다.
그때에는 맞다고 여겨졌지만 지금은 수정해야 할 내용이 있을 수 있고, 당시에는 충분히 알지 못했던 사실도 있을 것이다. 정수 기술과 수질 관리 기준이 달라진 만큼 과거의 설명을 그대로 반복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당시 책에 실었던 내용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원칙은 살리고, 시대에 맞지 않는 내용은 바로잡으며, 새롭게 밝혀진 사실은 보완할 것이다. 특정 정수 방식이나 제품을 일방적으로 높이거나 낮추기보다 각각의 원리와 장단점을 독자가 이해하도록 돕고자 한다.
앞으로 이어질 글에서는 물이 인체에서 하는 역할을 비롯해 하루 수분 섭취량, 갈증과 탈수, 수돗물과 생수의 차이, 정수기의 원리와 필터 관리, 약수와 지하수의 안전성 등을 차례로 살펴볼 것이다.
37년 전의 기록과 오늘의 과학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이 연재를 통해 독자가 물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빠지거나 광고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활환경에 적합한 물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창조주의 설계
물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창조의 기본 요소이다.
인간의 몸속에서 물은 혈액과 체액의 바탕이 되고, 영양소를 운반하며, 체온을 조절하고, 여러 생명 활동이 이루어지는 환경을 제공한다.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지만 그 가치를 잊기 쉽다.
풍족하게 사용할 때에는 너무도 평범한 것으로 여기지만,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면 물 한 모금이 얼마나 귀한 생명의 선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창조주께서 허락하신 물을 감사히 사용한다는 것은 단지 많이 마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안전하게 관리하고, 함부로 오염시키지 않으며, 다음 세대도 깨끗한 물을 누릴 수 있도록 자연환경을 지키는 일까지 포함한다.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와 깨끗한 물을 보전할 책임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맺음말
1989년의 나는 깨끗한 물을 찾기 위해 약수터를 오가고, 정수기 광고와 자료를 뒤지다가 결국 한 권의 책을 쓰게 되었다.
그 책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독자에게 읽혔고, 나를 건강 출판과 연구의 길로 이끌었다.
37년이 지난 지금, 낡은 서문을 다시 읽으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좋은 질문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대의 지식에 맞게 새롭게 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가?
몸속에서 물은 어떤 일을 하는가?
수돗물과 생수는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가?
정수기는 어떤 원리로 물을 거르며,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37년 전에도 중요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답은 과거의 주장이나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현재의 과학적 근거와 자신의 생활환경을 바탕으로 찾아야 한다.
다음 글부터 《물》에 담았던 기록을 하나씩 복원하면서 오늘의 지식에 맞게 다시 살펴보려 한다.
첫 번째 주제는 ‘물이란 무엇인가?…[1] 물의 정의’이다.
🌿 무병장수 건강노트
물은 매일 마시기 때문에 너무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막연한 불안에 휩쓸리거나 화려한 광고만 믿어서는 안 된다.
수돗물과 생수, 약수와 정수기에는 각각 확인해야 할 조건이 있다. 물의 출처와 관리 상태를 살피고, 정수기를 사용한다면 필터를 제때 교체하며 위생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건강한 물 습관은 특별한 물을 찾아다니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안전한 물을 선택하고, 내 몸의 필요에 맞게 꾸준히 마시는 것에서 시작된다.
무병장수 건강 전도사 서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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