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운동을 즐기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별다른 이상 없이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건강해 보였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닥터 월렉은 이런 질병의 배경에서 구리와 셀레늄 같은 미량 미네랄의 결핍을 중요하게 보았다. 우리 몸에 극히 적은 양만 존재하는 원소가 혈관과 심장,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처음 그의 강연을 들었을 때 나도 놀랐다. 이처럼 작은 영양소 하나가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는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서 구리와 셀레늄이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미량 원소라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미네랄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과 심장질환이나 암의 원인을 특정 영양소 하나로 단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번 글에서는 월렉의 문제 제기를 살리면서 오늘날 의학계가 구리와 셀레늄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함께 살펴본다.
“지혜 있는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잠언 18:15)
1. 구리는 혈관과 결합조직에서 어떤 일을 할까?
구리는 에너지 생성과 철의 대사, 신경계와 면역계의 기능에 관여하는 필수 미량 원소다. 특히 콜라겐과 엘라스틴을 만드는 효소의 작용을 도와 혈관과 피부, 뼈를 비롯한 결합조직의 구조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엘라스틴은 혈관이 심장 박동과 혈압 변화에 맞춰 늘어났다 다시 줄어들 수 있도록 탄력을 제공한다. 콜라겐은 혈관과 조직이 쉽게 찢어지거나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골격과 같은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심각한 구리 결핍은 결합조직과 혈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월렉은 운동 중 갑자기 사망한 일부 선수의 사례를 구리 부족으로 인한 혈관 탄력 저하와 대동맥 파열로 해석했다. 그러나 젊은 운동선수의 돌연사는 비대심근증과 부정맥, 선천성 관상동맥 기형, 마르판증후군 같은 유전성 결합조직질환 등 여러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다. 동맥류와 대동맥 파열 역시 고혈압과 흡연, 동맥경화, 유전, 노화 등의 영향을 함께 받는다.
구리가 혈관 건강에 필요하다는 원리에는 근거가 있지만, 돌연사와 동맥류를 구리 결핍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월렉은 흰머리와 피부 탄력 저하, 정맥류도 구리 부족의 신호로 보았다. 구리가 멜라닌 형성과 결합조직 유지에 관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흰머리와 주름은 유전과 노화의 영향이 크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만으로 구리 결핍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구리는 간과 조개류, 견과류, 씨앗류, 콩류와 통곡물 등에 들어 있다. 다양한 식품을 균형 있게 먹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결핍은 흔하지 않다.
2. 셀레늄과 심장 근육, 케샨병이 남긴 교훈
셀레늄은 항산화 방어와 갑상샘호르몬 대사, 면역 기능에 관여하는 필수 미량 원소다. 특히 세포가 산화 스트레스로 손상되는 것을 줄이는 셀레노단백질의 구성 성분으로 작용한다.
셀레늄 결핍의 위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의 케샨병이다. 토양 속 셀레늄 농도가 매우 낮았던 중국 일부 지역에서 어린이와 젊은 여성에게 심장근육이 손상되는 풍토성 심근병증이 발생했다. 이후 셀레늄을 공급하면서 발병률이 크게 줄었다.
케샨병은 특정 영양소의 심각한 결핍이 실제 질병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 중요한 사례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구분이 필요하다. 셀레늄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나타난 극단적인 결핍과, 이미 음식을 통해 충분히 섭취하는 사람이 보충제를 추가로 먹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셀레늄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충제를 더 투여한다고 심장질환 예방 효과가 커진다는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월렉은 NBA 선수 레지 루이스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셀레늄 결핍과 연결해 해석했다. 하지만 이는 그의 견해이며 실제 사인이 셀레늄 부족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죽음을 특정 영양소 하나로 설명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심혈관질환에는 고혈압과 높은 콜레스테롤, 당뇨병, 흡연, 비만, 운동 부족, 해로운 음주와 불건전한 식생활 등 여러 위험 요인이 관여한다. 심장을 지키려면 한 가지 보충제보다 이러한 위험 요인을 함께 관리하는 일이 우선이다.
3. 셀레늄과 암, 어디까지 밝혀졌을까?
우리 몸은 산소를 이용하는 대사 과정에서 활성산소를 만들어낸다. 활성산소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세포막과 단백질, DNA에 손상을 줄 수 있다. 셀레늄이 항산화 효소의 구성 성분으로 세포를 보호하는 데 관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월렉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셀레늄 같은 항산화 미네랄이 부족하면 세포 손상과 변이가 증가하고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셀레늄의 항산화 기능과 암 예방 효과는 구분해야 한다.
셀레늄이 인체에 필요하다고 해서 보충제를 더 많이 섭취하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셀레늄과 비타민 E의 암 예방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시행된 대규모 SELECT 임상시험에서도 기대했던 예방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암은 유전적 변화와 노화, 흡연과 감염, 비만, 환경 노출과 생활습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현재까지 셀레늄 결핍이 특정 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거나 셀레늄 보충으로 암을 막을 수 있다는 근거는 확립되지 않았다.
4. 예방을 강조한 문제의식은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월렉은 질병이 생긴 뒤 약물과 수술에 막대한 비용을 쓰면서도, 병이 생기기 전의 영양 상태와 생활습관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의료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의 표현에는 지나친 부분이 있다. 의료계가 이익을 위해 영양의 진실을 숨긴다고 단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현대 의학 역시 균형 잡힌 식생활과 운동, 금연과 절주, 정기검진을 만성질환 예방의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치료에 앞서 예방을 살펴야 한다는 그의 방향만큼은 새겨들을 만하다.
구리와 셀레늄은 적은 양으로도 중요한 일을 하지만, 부족하지 않게 섭취하는 것이 핵심이지 많이 먹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구리는 과도하게 섭취하면 간과 위장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셀레늄도 지나치면 탈모와 손톱 변화, 신경 증상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보충제부터 찾기보다 견과류와 씨앗류, 해산물과 생선, 달걀과 육류, 콩류와 통곡물 등 여러 식품을 고르게 먹는 것이 우선이다. 결핍이 의심된다면 증상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검사와 전문가의 상담을 거쳐야 한다.
닥터 월렉의 '90가지 필수영양소'도 현대 영양학이 공인한 숫자로 받아들이기보다, 몸이 여러 영양소의 균형 속에서 움직인다는 그의 문제의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맺음말
구리와 셀레늄은 혈관과 심장, 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에 필요한 필수 미량 원소다. 케샨병처럼 심각한 결핍이 특정 질병과 연결된 사례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흰머리가 늘거나 피부 탄력이 줄었다고 곧바로 구리 부족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피로하거나 심장이 두근거린다고 셀레늄부터 섭취해서도 안 된다. 심장질환과 암은 여러 원인이 함께 작용하는 질병이며, 미네랄 보충제 하나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
월렉의 강연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특정 미네랄의 이름이나 숫자가 아니다. 병이 생기기 전에 몸의 영양 상태와 생활습관을 살피라는 예방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내가 강조하는 건강의 5기둥과도 연결된다. 올바른 섭생으로 여러 영양소를 고르게 공급하고, 운동으로 심장과 혈관을 단련해야 한다. 해독을 통해 몸의 대사와 배출 기능을 돌보고, 충분한 수면으로 회복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 과식과 과음, 흡연을 멀리하며 건강을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이 더해져야 한다.
미량 미네랄도 이 다섯 기둥이 균형을 이룰 때 몸 안에서 제대로 쓰일 수 있다.
월렉의 강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미량 영양소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강하게 일깨웠다는 데 있다. 그의 주장 가운데 오늘날의 의학적 근거와 맞지 않는 부분은 걸러내되,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영양과 생활습관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는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
건강의 주권은 보충제에 대한 맹신이 아니라 올바른 지식과 균형 잡힌 생활에서 시작된다.
다음 글에서는 크로뮴과 바나듐이 혈당과 혈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월렉의 주장과 오늘날의 연구를 함께 살펴보겠다.
무병장수 건강 전도사 서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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