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암과 심장병은 나에게 책 속의 질병이 아니다. 가까운 지인들이 이 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병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손쓰기 어려운 단계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떠날 때마다 마음속에 같은 질문이 남았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2000년, 닥터 월렉의 강연 「Dead Doctors Don't Lie!」를 처음 들었을 때도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암과 심장병을 비롯한 여러 퇴행성 질환의 배경에 영양소 결핍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셀레늄과 비타민 E 같은 미량영양소의 역할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그의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들렸다. 암과 심장병처럼 복잡한 질병을 몇 가지 영양소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질병이 생긴 뒤의 치료만큼이나 발병 전의 영양 상태와 생활습관을 살펴야 한다는 문제 제기에는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지혜 있는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잠언 18:15)
이 시리즈를 다시 정리하는 지금, 나는 그 지식을 구하는 마음으로 닥터 월렉의 주장과 그 이후 쌓인 연구 결과를 함께 짚어보려 한다.
1. 닥터 월렉은 왜 영양소에 주목했을까
닥터 월렉은 수의학과 병리학을 공부하고 동물의 질병과 영양 상태를 관찰한 경험을 인간의 건강 문제로 확장했다. 가축을 기르는 현장에서는 특정 영양소가 부족할 때 질병이 발생하고, 그 결핍을 바로잡으면 상태가 달라지는 사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동물의 질병이 영양소 부족과 관련된다면, 인간의 질병도 같은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그의 강연 전체를 관통한다. 그는 현대 의학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는 많은 힘을 쏟으면서도, 질병이 발생하기 전의 영양 상태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의 모든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암과 심장병은 한 가지 원인으로 생기는 질병이 아니며, 현대 의학도 영양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병을 치료하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먹는 음식과 생활습관을 돌아봐야 한다는 그의 문제 제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2. 셀레늄은 왜 중요한가
셀레늄은 우리 몸에 아주 적은 양만 필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미량 원소다. 셀레늄은 여러 셀레노단백질의 구성성분으로 항산화 방어와 갑상샘호르몬 대사, DNA 합성, 생식과 면역 기능 등에 관여한다.
셀레늄 결핍과 질병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에서 알려진 케샨병(Keshan disease)이다.
중국의 셀레늄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서 발생했던 심근병증으로, 셀레늄 결핍이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밝혀졌다.
즉, 셀레늄이 인체의 정상적인 기능과 심장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라는 사실 자체는 분명하다.
닥터 월렉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현대인이 필요한 미네랄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만성적인 영양 불균형이 여러 퇴행성 질환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고 주장했다.
3. 레지 루이스의 죽음에 월렉이 던진 충격적인 주장
닥터 월렉의 강연에서 강렬한 대목 가운데 하나가 미국 프로농구 선수 레지 루이스(Reggie Lewis)의 죽음이다.
보스턴 셀틱스의 스타였던 레지 루이스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심장 문제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월렉은 이 사건을 언급하며 놀라운 주장을 했다.
값싼 셀레늄 공급만으로도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이 《죽은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를 평범한 건강강연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월렉은 값비싼 의료기술이 모든 문제의 답은 아니며, 인체가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먼저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레지 루이스의 사망 원인이 셀레늄 결핍으로 확인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것은 그의 죽음을 영양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닥터 월렉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 주장이 던지는 질문은 남는다.
첨단 의료기술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 몸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기본적인 영양 상태부터 살펴보고 있는가?

4. 비타민E가 주목받은 이유
비타민E 역시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다. 대표적인 지용성 항산화 영양소로 세포막을 산화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90년대에는 활성산소와 산화 스트레스가 노화와 여러 만성질환에 관여한다는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E를 비롯한 항산화 영양소가 큰 주목을 받았다.
1992년 4월 6일 《TIME》은 비타민 연구를 표지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닥터 월렉은 비타민과 미네랄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이 암과 심장병을 비롯한 퇴행성 질환을 예방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재료가 부족한데 어떻게 건강한 몸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월렉 영양철학의 핵심이다.
5. 기대와 다른 결과를 보여준 SELECT 연구
월렉의 강연 이후 셀레늄과 비타민E를 둘러싼 연구는 계속됐다. 그 가운데 중요한 연구가 셀레늄과 비타민E의 암 예방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NCI)가 지원한 대규모 연구가 진행됐다.
'셀레늄 및 비타민E 암 예방 임상시험', 즉 SELECT 연구다.
연구진은 셀레늄과 비타민E를 각각 또는 함께 섭취하면 전립선암 발생을 줄일 수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예방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1. 셀레늄 단독 - 전립선암 위험을 낮추지 못함
2. 비타민E 단독 - 오히려 전립선암 발생률 증가
3. 두 영양소 병용 - 예방 효과 확인되지 않음
이 결과가 셀레늄과 비타민E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두 영양소는 정상적인 신체 기능에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필요한 만큼 섭취하는 것과 고용량 보충제를 장기간 섭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부족한 영양소를 채우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미 충분한 사람이 더 많이 섭취한다고 해서 건강 효과가 계속 커지는 것은 아니다.
암 예방을 목적으로 셀레늄이나 비타민E 보충제를 임의로 고용량 섭취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 음식과 보충제는 똑같지 않다
영양에 관한 자료를 읽다 보면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특정 영양소가 들어 있는 음식을 먹는 것과, 그 성분만 고용량으로 추출한 보충제를 섭취하는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음식에는 한 가지 성분만 들어 있지 않다. 채소와 과일, 콩류, 견과류, 생선에는 비타민과 미네랄뿐 아니라 식이섬유와 단백질, 지방산, 다양한 생리활성물질이 함께 들어 있다. 이 성분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몸 안에서 작용한다.
반면 보충제는 특정 성분을 농축한 것이다. 결핍이 있거나 음식만으로 충분히 섭취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필요할 수 있지만, 개인의 건강 상태와 섭취량을 고려하지 않고 사용하면 과잉 섭취나 약물 상호작용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셀레늄도 마찬가지다. 적정량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섭취하면 머리카락과 손톱의 변화, 위장 장애, 신경계 이상 등의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항산화 영양소이므로 많이 먹을수록 좋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영양소는 결핍되지 않도록 채우는 것이 우선이지, 무조건 많은 양을 섭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7. 월렉의 '90가지 필수영양소'
닥터 월렉은 자신의 강연에서 인간이 매일 60종의 미네랄, 16종의 비타민, 12종의 아미노산과 3종의 필수지방산을 섭취해야 한다며 이를 '90가지 필수영양소'라고 불렀다.
월렉은 이 가운데 하나라도 부족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90가지’라는 구체적인 숫자와 분류는 오늘날 표준 영양학의 필수영양소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숫자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철학은 분명하다.
인체는 한두 가지 영양소만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수많은 영양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동하는 정교한 생명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90가지라는 숫자를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우리 몸이 다양한 영양소의 균형 속에서 기능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한 가지 성분을 만능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것보다, 여러 식품을 고르게 먹고 필요한 경우 검사와 전문가의 판단을 거쳐 부족한 영양소를 보완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8. 셀레늄과 비타민E는 암과 심장병을 막을 수 있을까?
이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셀레늄과 비타민E는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다. 부족하면 정상적인 생리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곧바로 “셀레늄과 비타민E를 보충제로 먹으면 암과 심장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결론으로 넘어갈 수는 없다.
암과 심혈관질환에는 유전, 노화, 흡연, 음주, 식생활, 비만, 운동 부족, 환경적 요인 등 여러 위험요인이 복합적으로 관여한다.
그렇다면 월렉의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질병이 생긴 뒤 약과 수술만 찾기 전에, 평소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을 제대로 공급하고 있는가?
바로 이 질문이 내가 2000년 그의 강연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핵심이다.
맺음말
암과 심장병은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재앙이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생활습관과 환경, 유전적 특성, 노화와 여러 위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영양도 그 가운데 중요한 한 부분이다.
셀레늄과 비타민E는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지만 암과 심장병을 물리치는 치료제가 아니다. 음식으로 충분히 섭취하는 것과 고용량 보충제로 예방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내가 이 책에서 받아들인 가장 중요한 교훈은 특정 영양소의 이름이나 숫자가 아니다.
질병이 찾아온 뒤에만 건강을 생각하지 말라. 병이 생기기 전에 몸을 살피고, 매일 먹는 음식과 마시는 물을 돌아보며, 운동과 수면, 마음의 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몸에 필요한 영양을 고르게 공급하고 정기적인 검진으로 위험 요인을 확인하며, 이상이 발견되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바른 길이다.
두려움은 근거 없는 확신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다.
정확한 지식을 배우고, 그 지식 위에서 자신의 생활을 바르게 세울 때 비로소 두려움에서 한 걸음 벗어날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관절염과 연골 건강을 둘러싼 닥터 월렉의 주장을 살펴보겠다.
무병장수 건강 전도사 서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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