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는 말 — 잠은 멈춤이 아니라 생명 활동의 시간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편 4:8)
사람은 인생의 약 3분의 1을 잠으로 보낸다. 90세를 산다면 단순 계산으로 약 30년을 잠자리에서 보내는 셈이다. 이렇게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잠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잠든 몸은 결코 멈춰 있지 않다.
뇌의 활동은 단계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하고, 기억과 감정에 관련된 정보가 처리되며, 호르몬과 자율신경계의 활동도 밤새 변화한다. 몸은 깨어 있는 동안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명의 균형을 유지한다. 충분한 수면과 좋은 수면의 질은 심혈관계와 대사 건강, 면역, 기분, 집중력과 기억력 등 전신 건강과 연결된다.
나는 건강을 지탱하는 다섯 기둥을 섭생·운동·해독·수면·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도 잠이 계속 무너지면 건강의 한 축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눈을 감고 잠든 몇 시간 동안 몸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수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걸음은 먼저 잠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다.
1.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잠은 낮 동안 지친 몸과 뇌를 쉬게 하는 수동적인 상태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수면과학이 보여주는 모습은 훨씬 역동적이다.
잠이 들면 의식은 외부세계에서 멀어지지만 뇌와 몸에서는 단계마다 서로 다른 활동이 이어진다. 수면은 심장과 대사, 사고력과 집중력 등 여러 신체 기능에 영향을 미치며, 충분하지 않거나 질이 떨어지는 수면이 계속되면 건강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건강한 수면을 단순히 ‘몇 시간 누워 있었는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얼마나 충분히 잤는가와 함께 잠이 얼마나 잘 이어졌는지, 필요한 수면단계가 정상적으로 반복되었는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개운한지, 낮 동안 졸림이나 집중력 저하가 없는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건강한 수면에서는 수면시간뿐 아니라 중간에 반복적으로 깨지 않고 개운하게 자는 ‘수면의 질’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잠은 하루의 남은 시간이 아니다. 건강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생리적 시간이다.
2. 수면에는 두 개의 큰 세계가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는 수면을 크게 두 가지 상태로 구분한다.
처음 한 번은 정식 영문 명칭부터 알아두자.
Non-Rapid Eye Movement Sleep(NREM, 비렘수면)과 Rapid Eye Movement Sleep(REM, 렘수면)이다.
이후부터는 NREM(비렘수면), REM(렘수면)으로 부르겠다.
NREM(비렘수면)은 다시 N1·N2·N3 세 단계로 나뉜다. 즉 잠은 단순히 ‘얕은 잠과 깊은 잠’ 두 종류가 아니라 N1 → N2 → N3를 거쳐 REM(렘수면)으로 이어지는 여러 단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밤새 한 번만 일어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NHLBI에 따르면 NREM(비렘수면)과 REM(렘수면)은 대략 80~100분을 한 주기로 반복하며, 일반적으로 하룻밤에 약 4~6회의 수면주기가 나타난다. 주기와 주기 사이에는 잠깐 깨어날 수도 있다.
우리가 한밤중에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드는 일이 반드시 비정상적인 것은 아닌 이유다.
3. N1 — 깨어 있음에서 잠으로 들어가는 문
N1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잠으로 넘어가는 가장 얕은 수면단계다.
눈을 감고 누워 있다가 주변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생각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몸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하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도 감소하지만, 아직 쉽게 깨어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자신이 잠들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한숨도 못 잤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수면검사에서는 짧게 N1이나 N2 수면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N1은 짧은 통로와 같다. 본격적인 수면으로 들어가기 위해 깨어 있는 세계와 잠의 세계 사이를 건너는 첫 번째 문이다.
4. N2 — 본격적인 잠이 시작된다
N1을 지나면 N2 단계로 들어간다.
NHLBI는 N2에 도달하면 본격적으로 잠든 상태라고 설명한다. 수면검사에서는 뇌파에 ‘수면방추(sleep spindle)’와 K복합체(K-complex)라는 특징적인 파형이 나타나 N2를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 단계에서는 외부 환경에 대한 반응이 더욱 줄어들면서 수면이 안정된다.
N2를 그저 N1과 깊은 잠 사이의 중간단계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성인의 수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중요한 단계이며, 밤이 깊어지면서 N1·N2·N3와 REM이 서로 다른 비율로 반복된다.
잠은 전등 스위치처럼 ‘깨어 있음 → 잠’으로 단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여러 단계를 지나며 뇌와 몸의 상태가 차례로 변화한다.
5. N3 — 깊은 잠, 몸이 가장 깊이 잠드는 시간
N3는 흔히 ‘깊은 잠(deep sleep)’ 또는 ‘서파수면(slow-wave sleep)’이라고 부른다.
이때 뇌파에는 크고 느린 파동이 두드러지며 사람을 깨우기도 어려워진다. N3는 밤새 똑같은 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밤의 전반부에 더 많이 나타난다.
우리가 “푹 잤다”고 느끼는 데 깊은 수면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깊은 수면은 신체 회복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깊은 잠만 많이 자면 좋은 수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건강한 잠에는 N1·N2·N3뿐 아니라 뒤에서 살펴볼 REM(렘수면)도 필요하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나이에 따라 수면구조가 변한다는 점이다. 깊은 서파수면은 어린 시절에 많고 성장하면서 감소하며, 성인이 된 뒤에도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젊을 때처럼 깊이 잠들기 어렵다고 느끼는 데에는 이러한 생리적 변화도 영향을 미친다.
6. REM — 몸은 잠들어 있지만 뇌는 활발하다
NREM(비렘수면)을 지나면 매우 독특한 상태가 나타난다.
바로 REM(렘수면)이다.
REM이라는 이름은 이 단계에서 감은 눈꺼풀 뒤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에서 비롯됐다. 이때 측정되는 뇌 활동은 깨어 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생생한 꿈도 REM에서 흔히 나타난다.
더 놀라운 현상도 있다.
REM 동안에는 팔다리의 주요 골격근 활동이 크게 억제된다. 꿈속에서 뛰고 싸우더라도 몸이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도록 하는 생리적 장치인 셈이다.
REM은 특히 밤의 후반부로 갈수록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새벽잠을 습관적으로 지나치게 줄이면 전체 수면시간뿐 아니라 정상적인 수면구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꿈은 NREM에서도 나타날 수 있지만 REM에서 더 생생한 경우가 많다. 꿈의 정확한 기능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감정 처리 등에 관여할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7. 좋은 잠은 ‘시간’과 ‘구조’가 함께 만든다
잠을 몇 시간 잤는지는 분명 중요하다.
CDC는 18~60세 성인에게 하루 7시간 이상의 수면을 제시하고 있으며, 필요한 수면시간은 연령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수면시간만 채웠다고 충분한 것은 아니다. 반복해서 깨거나 아침에 일어나도 피곤하고 낮 동안 계속 졸리다면 수면의 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점이 수면 건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운동할 때 운동시간뿐 아니라 강도와 방법을 생각하고, 식사할 때도 단순히 음식의 양뿐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생각한다. 그런데 잠에 대해서는 유독 ‘몇 시간 잤는가’만 따지는 경우가 많다.
수면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시간, 정상적인 수면주기, 깊은 수면과 REM(렘수면), 불필요한 각성이 적은 연속성, 그리고 아침에 회복되었다고 느끼는 상태가 함께 어우러져야 좋은 잠에 가까워진다.
8. 수면은 건강의 다섯 기둥 가운데 하나다
나는 건강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섭생·운동·해독·수면·마음이라는 다섯 기둥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그 가운데 수면은 다른 네 기둥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낮 동안 어떻게 먹고 움직였는지는 밤의 잠에 영향을 미치고, 밤에 어떻게 잤는지는 다음 날의 식욕과 활동, 집중력과 감정 상태에 다시 영향을 준다. 몸은 각각의 기능이 따로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을 줄여 얻은 시간을 ‘번 시간’이라고만 생각하기는 어렵다.
잠은 하루에서 잘라내도 되는 여분의 시간이 아니라 다음 날의 몸과 뇌를 준비하는 생명 활동의 일부다.
맺음말
우리는 잠이 들면 세상과 잠시 연결을 끊는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몸과 뇌에서는 정교한 변화가 계속된다.
NREM(비렘수면)의 N1에서 잠의 문을 열고, N2에서 본격적인 수면으로 들어가며, N3의 깊은 잠을 거친다. 이어 REM(렘수면)에 이르면 뇌 활동은 다시 독특한 양상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과정이 하룻밤 동안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하나의 수면을 완성한다.
나는 건강을 위해 무엇을 더 먹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만큼, 매일 어떻게 잘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잠은 게으름도 아니고 낭비도 아니다.
깨어 있는 동안 열심히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몸에 반드시 주어야 하는 시간이다. 좋은 수면을 생활습관으로 만드는 것은 건강의 다섯 기둥 가운데 하나를 튼튼하게 세우는 일이다.
올바른 지식을 알고 반복하여 실천하고 마침내 습관으로 만드는 것. 수면 건강 역시 여기에서 시작한다.
다음 글에서는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잠든 사이 뇌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억과 학습·감정 그리고 최근 수면과학에서 주목받고 있는 뇌의 노폐물 처리 체계인 ‘글림프계’까지 살펴본다.
무병장수 건강 전도사 서웅찬 ✍️
주요 참고자료: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심장·폐·혈액연구소(NHLBI) 「How Sleep Works — Sleep Phases and Stages」,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About Sleep」, 미국 국립신경질환·뇌졸중연구소(NINDS) 「Understanding Sleep」.